뉴스
[간증] 부활수양회 통한 4가지 변화 - 김봉재 전도사(대구교회)
작성자
office
작성일
2026-04-12 09:45
조회
8676
2026년 부활 수양회를 통하여 깨닫고, 결단한 부분들을 적어 보겠습니다.
첫째. 절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명의 사이클
이번 수양회에서 새롭게 눈을 뜬 부분은 '절기'의 중요성입니다. 절기는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우리 삶에 강력한 영적인 리듬을 만드는 '생명의 사이클'임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느헤미야 시대에 초막절을 회복하며 종교 개혁과 사회 개혁을 이루었듯, 우리 개인과 가정의 개혁 역시 하나님이 정하신 영적 절기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됨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신성한 약속인 '모에드', 그리고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의 축제인 '하각'을 통해 제 신앙의 체질을 바꾸고 싶습니다. 이번 2026년 부활 수양회는 저에게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가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로 서 있었는지를 처절하고도 명확하게 직면하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말씀 중에서도 특히 제 마음을 강하게 뒤흔든 단어는 바로 ‘모에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즉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신성한 약속이라는 이 의미가 제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 사이의 약속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깁니까? 인간관계에서 약속은 곧 그 사람의 신뢰도이며, 사업이나 사회생활에서도 약속을 어기는 것은 곧 실패의 시작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람과의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다했고, 만약 그 약속이 깨졌을 때는 상대방의 신뢰를 잃을까 노심초사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양회를 통해 정작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약속은 얼마나 가볍게 여겨왔는지를 깨닫고 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주일과 절기는 그저 반복되는 종교적 관습이거나, 내 스케줄에 맞춰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만나 대화하시기 위해 '모에드'라는 특별한 시간을 구별하여 초대하셨는데, 저는 그 초대장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생명처럼 지켜야 할 그 약속 시간을 기쁨으로 기다리기는커녕, 때로는 지루하게 여기거나 세상의 분주함을 핑계로 뒷전으로 미루기도 했습니다. 창조주와의 약속이 세상의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약속보다도 가볍게 취급되었던 저의 영적 무지를 통회합니다. 이제 저는 이번 수양회를 기점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인 ‘모에드’를 제 인생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최고의 약속으로 삼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증거이며, 이 영적 리듬이 깨질 때 내 삶의 모든 질서도 무너진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예배가 아니라, 약속 장소에 미리 나가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를 기다리는 연인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기쁨으로 절기와 주일을 예비하겠습니다.
둘째, 죄의 심각성과 십자가의 대속과 끊어내야 할 어둠의 사슬
이번 수양회를 통해 가장 먼저 직면한 것은 내 안에 뿌리 깊게 박힌 ‘죄’의 실체였습니다. 그동안 죄를 단순히 개인적인 실수나 도덕적인 결함 정도로 여겼던 저의 안일함을 회개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창조주를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본질적인 반역이며,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결국 영원한 둘째 사망으로 이끄는 인류의 가장 심각한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죄의 3차원적 구조인 뿌리인 원죄, 줄기인 조상 가문의 죄, 그리고 열매인 자범죄에 대한 가르침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죄는 단순히 내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헤롯 가문의 잔인함이 대를 이어 증폭되었듯 영적인 전염성과 상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내 가문에 흐르는 쓴 뿌리와 영적인 흐름을 방치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자녀 세대에게도 어둠을 물려주는 일임을 통감했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죄의 실체 앞에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선포되었습니다. 2,000년 전 비아 돌로로사를 걸으신 주님의 고통은 관념이 아닌 역사적 실체였으며,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선언은 저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이제는 어린양의 피로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았음을 선포합니다. 내면의 고통, 관계의 어려움, 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예수의 이름으로 끊어내고, 비워진 자리에 성경의 세계관과 성령의 것으로 채우는 영적 대청소를 시작할 것입니다.
셋째. 부활은 역사의 빛이자 일상에서 누리는 생명이자 능력
부활은 2천 년 전의 사건이나 교리가 아니라, 오늘 나의 삶에서 작동하는 실제적 권능이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하신 주님은 마르다의 막연한 전통적 신앙을 '현재적 부활 신앙'으로 바꾸셨습니다. 저 또한 고난을 만날 때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졌던 이유는 평상시 부활의 능력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신앙은 삶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는 티켓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의 가정과 일터에서 '빛의 상속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며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의 끈(생명)을 보여주는 자들입니다.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두려운 종착역이 아닙니다. 육신의 장막이 끝나면 영원
한 주의 장막에 거할 것을 믿기에, 오늘 하루를 '멋지게 살고 멋지게 가기 위한' 사명의 시간으로 채우겠습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부활의 현재성을 선포하며, 어떤 절망적인 무덤 문이라 할지라도 이미 열렸음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겠습니다.
넷째. 거룩한 후츠파, 신앙의 야성을 회복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점잖음을 벗어던지고 '거룩한 후츠파'를 회복하라는 말씀은 저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뻔뻔할 정도로 간청하는 자의 기도를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오만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가질 수 있는 거룩한 담대함입니다. 그동안 저는 "주시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타협적인 기도를 해왔음을 회개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끈질기게 매달리고,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영적 야성이 제게 필요합니다. 단순히 나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거룩한 뻔뻔함'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의 삶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명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공부하는 이유도, 우리가 직업을 갖는 이유도 오직 주를 위해서입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말씀을 받들어, 제 직업과 일터가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는 선교의 현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및 다짐
이번 부활 수양회는 제 신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첫째, 절기와 반복의 힘을 통해 나와 가정을 거룩한 영적 생태계로 세워가겠습니다. 둘째, 내 가문과 삶에 흐르는 죄의 줄기를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끊어내겠습니다. 셋째, 부활의 현재성을 믿으며 날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넷째, 거룩한 후츠파를 가진 기도의 용사가 되어 하나님의 창고 문을 열겠습니다.
머리만 커진 바리새인이 아니라, 깨달은 바를 24시간 이내에 실천하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고난의 끝에는 반드시 승리가 있음을 믿으며,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 제 삶을 온전히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